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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속도보다 방향이 먼저다— 되돌아오는 비용을 줄이는 선택의 기준

 

 

안개 낀 새벽 갈림길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멈춘 차량과 양방향 표지판이 속도보다 방향을 먼저 계산하는 선택의 순간을 상징하는 장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방향보다 속도를 먼저 선택하는가.

 

나는 한동안 빠르게 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결정을 미루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일단 움직이고 보는 사람들.

 

그들은 언제나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멈춰 서 있는 나보다
덜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상한 계산 하나를 반복해서 하게 되었다.

 

빠르게 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주 되돌아오는가.

 

되돌아오는 데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나,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나타났거나,
혹은 애초에 목적지가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거나.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되돌아오기까지 치러야 했던 비용이 아닐까.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실패 그 자체보다

 

방향을 확인하지 않은 채
쏟아부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다시 판단해야 하는 피로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두고
“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망한 것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서두른 시간 전체다.


1) 나는 속도보다 ‘순서’를 먼저 보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속도보다 순서를 먼저 보게 되었다.

 

이 선택이
지금 빨라야 하는 선택인지,
아니면 아직 멈춰 있어야 하는 선택인지.

 

이 질문은
용기와 나태를 가르는 질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계산의 문제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선택 앞에서
세 가지를 먼저 본다.

  •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인가
  • 실패했을 때 비용은 얼마나 남는가
  • 이 경험은 다음 선택에서도 다시 사용할 수 있는가

이 세 가지가 흐릿할 때,
나는 서두른 선택이
대개 나를 더 멀리 데려가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다.


2) 멈춤은 공백이 아니라 ‘저장’이었다

멈춰 있는 시간은
겉으로 보기엔 정체처럼 보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감정은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정체는 곧 도태라는 말을
너무 오래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장부를 쓰기 시작했다.

 

방향을 고민하며 읽은 책들,
말로 옮기지 못한 생각들을 정리한 기록들,
왜 이 선택은 불편하고
왜 저 선택은 마음에 걸리는지를
스스로에게 설명하던 시간들.

 

이것들은
한 번 쓰고 사라지는 자원이 아니었다.

 

이번 선택에서도 작동했고,
다음 선택에서도 다시 나타났으며,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되돌아오는 비용을 분명히 낮춰주었다.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정체처럼 보이던 시간은
공백이 아니라
방향 감각을 저장하는 구간이었다는 것을.


3) 빠름은 도구다 — 방향 이후에만

그래서 이제 나는
빠르게 가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빠름은 여전히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방향이 확인된 뒤에만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한다.

 

방향 이전의 속도는
대개 비용을 키우고,
방향 이후의 속도는
비로소 성과를 만든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사람은 평생
열심히 움직였다는 기억만 남긴 채
같은 자리에 서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

이 글은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위로를 하고 싶어서 쓰지 않았다.

 

오히려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지금의 멈춤이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는 공백인지,
아니면
다음 선택을 덜 비싸게 만들기 위한
준비인지.

 

책을 읽고,
생각을 남기고,
스스로의 판단 기준을 세우고 있다면
그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다음 선택에서 반드시 모습을 드러낸다.

 

빠르게 가는 사람은
먼저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방향을 아는 사람은
되돌아오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나는 그 차이가
삶을 오래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믿는다.

 

 

 

이 기록은 Savor Balance 아카이브의 한 좌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