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립을 끝내는 길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함께 사는 리듬을 복원하는 ‘작은 부족의 철학’에 있다. 3주의 고립 끝에 얻은 방향성의 기록.
📘 시리즈 인트로
《집안일은 혼자 버틸 수 없다 – 고립된 가족에서 작은 부족으로》
이 시리즈는
- 1편에서 현대 가족을 고립시키는 시스템을 해부하고,
- 2편에서 그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실제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기록했다.
이번 3편은 정답을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각자가 자신만의 “작은 부족”을 세워갈 수 있도록
철학적 방향성과 현실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
3주 동안 집안을 지키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해결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시 함께 사는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을.
📝
부제: 고립된 역할에서, 함께 사는 리듬으로
🟦 1. 3주의 고립이 나에게 가르쳐준 사실
나는 원래 고립을 견디는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글을 쓰고, 사유하고, 혼자 버티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집안일 정도는 하루 종일 혼자 해도 괜찮겠지.”
그러나 3주 동안 집안을 지키는 역할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본 뒤,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는지 깨달았다.
고립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인간을 침식시킨다.
- 시간의 흐름이 단절되고
- 대화가 사라지고
- 인정받지 못하며
- 역할이 삶 전체가 되어버리고
- ‘나’라는 존재가 구조 속에서 증발한다
나는 그렇게 빠르게 무너졌다.
그제야 비로소,
아내가 수년간 이 구조 속에서 버텨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묻게 되었다.
“무엇이 아내를 힘들게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이 구조를 힘들게 했는가?”
🟦 2. 해결책은 없다. 그러나 방향성은 있다
사람들은 정답을 원한다.
- 부부가 덜 싸우는 방법
-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
- 역할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역할 분담’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역할이
고립 속에서 수행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해결책을 말할 수 없다.
가족마다, 지역마다, 조건마다 해답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향성은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하다.
현대 가족은 다시 작은 부족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작은 부족이란,
함께 움직이고, 의미와 성취를 공유하는 생활 단위를 뜻한다.
- 함께 움직이고
- 함께 의미를 만들고
- 함께 성취를 공유하는 리듬
그것이야말로 관계를 되살리는 구조다.
과거의 부족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함께 사는 리듬”의 복원이다.
윤리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이 고립되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의 문제다.
🟦 3. 작은 부족을 만드는 현대적 모델들
나는 “이렇게 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가능한 지도를 제시한다.
각자는 이 지도 위에서
자기 길을 찾을 수 있다.
(1) 업(業)을 공유하는 작은 프로젝트
꼭 분식집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핵심은 같은 사건·같은 리듬·같은 성취를 공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 가족 공동 브랜드
- 소규모 온라인 숍
- 글·영상·수공예 등 공동 창작
- 식재료·요리 기반의 작은 수공업
- 지역 기반 공동 서비스(배달·돌봄·수리 등)
이런 ‘작은 업’은
두 사람을 다시 연결한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함께 만들었는가?”
이 질문을 공유하는 순간,
가족의 리듬은 다시 살아난다.
(2) 외부 공동체를 활용한 ‘반(半)부족’ 모델
모든 부부가 함께 일할 수는 없다.
직장·시간표·생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제3의 공간이다.
- 동네 공동육아
- 주부 코워킹 스페이스
- 시간제 공동 돌봄
- 작은 마을 단위의 노동 공유 네트워크
완벽한 부족이 아니라도 좋다.
조각난 공동체라도 있는 것이,
완전한 고립보다 훨씬 낫다.
(3) 부부가 서로의 세계를 아는 최소 장치들
아주 간단하지만 효과는 압도적이다.
- 하루의 업무일지 / 감정일지 교환
- 서로의 세계에 10%만 참여하기
(한 달에 한 번, 서로의 일터·공간에 동행하기) - 일주일 중 하루는 ‘역할 교대의 날’ 지정
- 감정노동 체크리스트 함께 관리하기
이 작은 장치들은
‘역할’을 의무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통로로 바꾼다.
🟦 4. 나의 경우: ‘글 · 택배 · 브랜드’라는 작은 부족
나는 아직 완성된 모델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 나는 글을 쓰고
- 택배 일을 하며
- 아내는 가능한 방식으로 참여하며
- 함께 작은 브랜드를 세워나가는 것
중요한 것은 거창함이 아니다.
핵심은 단 하나다.
“우리가 같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이야말로
고립을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 5. 결론 — 정답 대신, 방향을 건네는 글
나는 여전히 완벽한 해결책을 모른다.
그러나 3주의 고립과,
그 과정에서의 눈물 섞인 사유,
그리고 아내에게 드리는 사과를 통해
확신하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가족은 다시 작은 부족이 되어야 한다.
역할의 분담이 아니라,
삶의 공유를 중심으로.
이 철학은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지금도 생성 중인 방향성이다.
나는 이 글이 정답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이 방향성을 손에 쥐고,
자신만의 작은 부족을 세워가는
조용한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의 고립 속에서 무너지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함께 지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위기는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사는 리듬이 사라진 구조의 문제다.
📚 미주 · 각주 · 참고문헌
- Arlie Russell Hochschild, The Second Shift: Working Families and the Revolution at Home, Viking, 1989.
- Robert D. Putnam,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 Simon & Schuster, 2000.
- John Cacioppo & William Patrick, Loneliness: Human Nature and the Need for Social Connection, W. W. Norton, 2008.
- John M. Gottman, The Seven Principles for Making Marriage Work, Harmony Books, 1999.
- 드라마 〈Resurrection: Ertuğrul〉 (2014–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