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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집안일은 혼자 버틸 수 없다 1편 / 행복한 부부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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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앉아 조용히 두 손을 모은 채 고립과 일상의 무게를 생각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

 

행복해 보이는 부부의 비밀은 성격이 아니라 구조다. 분식집 부부에서 현대 가족이 잃어버린 공동체의 원형을 다시 배운다.

 

 

🟦《집안일은 혼자 버틸 수 없다 – 고립된 가족에서 작은 부족으로》 시리즈는
오늘의 가족이 왜 이렇게 쉽게 지치고, 쉽게 오해하고, 쉽게 고립되는지를 다룹니다.

 

1편은 행복해 보이는 부부들의 ‘숨은 구조’를 드러내고,
2편은 그 구조가 무너진 자리에서 한 개인이 직접 겪은 고립의 무게를 기록합니다.
3편은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

행복한 부부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함께 사는 리듬’이라는 구조가 있다.


📝

**부제: 현대 가족의 위기는 역할이 아니라 고립에서 시작된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왜 오늘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고전을 읽다 보면 흔히 이런 말을 듣습니다.
“남편은 이래야 한다.”
“아내는 저래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면
의도와 상관없이 비극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소설 _《82년생 김지영》_과 영화처럼,
유능했던 여성이 결혼 후 고립 속에서 언어를 잃고,
실어증이 올 만큼 무너지는 일도 실제로 벌어집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가족 구조의 고립이 초래하는 현상입니다¹.

문제는 남편이 나빠서도, 아내가 약해서도 아닙니다.
역할을 지탱해주던 공동체의 구조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과거 부족 사회에서는
전쟁터에 나간 에르투룰이 있어도
할리메와 여성 공동체가 함께 일하고 돌보고 살아냈습니다.

▶ 에르투룰(Ertuğrul)과 전통 공동체 구조에 대하여

터키 사극 드라마 **《Diriliş: Ertuğrul(부활: 에르투룰)》**은
13세기 오구즈 투르크 부족의 실제 역사와 공동체 구조를 기반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핵심은 다음 한 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역할은 혼자가 아니라 부족 공동체가 지탱한다.”

전쟁터에 나간 에르투룰이 부재한 동안에도
부족의 여성 공동체와 장로들, 형제들, 전사들이
노동·육아·방어·의사결정을 나누어 수행합니다.
즉, 개인의 역할이 공동체 리듬 속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구성원도 고립되지 않습니다.

요점은 드라마의 재미가 아니라,
전통 사회의 공동체적 생존 구조가 현대 가족의 고립 구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예시는 현대 가족이 잃어버린 ‘기초 단위 공동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류학적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인류학적으로도 반복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본래 공동체 기반 노동 속에서 생존해왔습니다².

한국에서도 빨래터와 골목, 마당과 이웃이
육아와 생활 전반을 나누는 구조가 존재했습니다³.

그러나 현대의 아내는 집에서 고립됩니다.
남편은 일터에서 고립됩니다.
아이도 학교에서 고립됩니다.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역할을 떠받치던 공동체는 사라졌습니다.


🧩 1. 역할이 문제가 아니라 ‘고립 구조’가 문제다

어떤 역할이든—가정을 지키는 일이든,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든—
혼자 고립된 공간에서 수행하면 결국 인간은 소진됩니다.

가정주부가 힘든 이유는
집안일의 양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 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 대화 상대가 없고
• 감정을 교환할 통로가 없고
• 사회적 피드백도 없고
• 실력과 기여가 인정되지 않고
•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인간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⁴.

역할은 고립 속에서 기능할 수 없습니다.


🧩 2. 한국 사회의 두 명제: 왜 모순처럼 보일까?

한국에는 오래된 두 가지 말이 있습니다.

“부부는 절대 같이 일하면 안 된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부부는 유독 행복해 보인다.

이 모순은 실제로는 모순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중요한 사실을 드러냅니다.

✔ 부부가 갈등을 겪는 이유는 “같이 일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리듬을 공유하지 못해서”입니다.

부부가 따로 살면
• 사건이 따로 축적되고
• 감정의 리듬이 다르게 흐르고
• 서로의 하루를 모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 연결을 회복할 접점이 사라집니다

즉, 관계의 바탕이 된 공유된 하루(shared day)가 사라집니다⁵.

반면 가족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부부는
• 같은 공간에서
• 같은 손님을 만나고
• 같은 사건을 겪고
• 같은 성취를 쌓으며
• 같은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기여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고립이 공동체로 바뀝니다.


🧩 3. 왜 분식집 부부는 서로 더 행복해 보일까?

많은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 남편은 참 착한가 보다.”
“아내가 저렇게 행복한 걸 보면 남편이 좋은 사람이겠지.”

물론 성품의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핵심을 놓칩니다.

행복은 착한 성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든 성취에서 온다.

분식집 부부의 아내는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 매출을 함께 만들고
• 손님과 소통하고
• 일의 의미를 공유하고
• 작은 성취를 누적하고
• 기여감과 자존감을 경험합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기여를 실시간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감사와 존중이 쌓이며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 느낌이 듭니다.

즉, 그들의 행복은 성격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입니다.
그들은 공동체 리듬 속에서 살아갑니다.


🧩 4. 현대 가족이 잃어버린 것: ‘초소형 공동체’

가족이 무너지는 이유는 역할 때문이 아니라
그 역할을 지탱하던 초소형 공동체 단위가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 공동 육아
• 공동 노동
• 공동 식사
• 공동 대화
• 공동 사건

이 모두가 존재했습니다⁶.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분리된 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작은 공동체를 복원해야 합니다.

꼭 분식집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 “함께 움직이고, 함께 의미를 만들고, 함께 성취를 공유하는 구조.”

이것이 가족의 리듬을 다시 일으킵니다.


🧩 5. 오늘, 모든 남편들에게 그리고 가장에게

이제는 역할을 논할 때가 아닙니다.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재건해야 할 때입니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배우자가 고립되지 않도록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이
• 가족 가게이든
• 가내수공업이든
• 온라인 프로젝트든
• 작은 브랜드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함께 살아야 합니다.
같은 사건을 겪고,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며,
같은 성취를 품어야 관계가 회복됩니다.


🟦

역할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그 역할이 고립 속에서 수행되는 구조입니다.

분식집 부부의 행복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공동체의 원형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원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에 맞는 방식으로 복원해야 합니다.

👉 다음 2편에서는 ‘이 고립 구조가 실제로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나의 경험을 통해 기록합니다.


📚 미주 · 참고문헌

  1. 김지영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돌봄·가사·정서적 고립 문제는 한국 사회의 성별 분업 구조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
     참고: UN Women, Progress of the World’s Women: Families in a Changing World, 2019.
  2. Jared Diamond, The World Until Yesterday, Viking, 2012 — 전통 사회에서의 공동체 기반 육아·노동 구조 분석.
  3.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가사·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 재조명 연구」, 2022.
  4. John Cacioppo & William Patrick, Loneliness: Human Nature and the Need for Social Connection, W. W. Norton, 2008.
  5. John M. Gottman, The Seven Principles for Making Marriage Work, Harmony Books, 1999.
  6. Robert D. Putnam,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 Simon & Schuster,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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