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저녁의 시간은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 시간 속에서
무엇이 회복되고,
무엇이 소모되고 있는지는
거의 묻지 않는다.
— 개인의 노화에서 사회 구조의 문제로
치매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개인을 떠올린다.
나이가 들어서,
유전이 있어서,
관리를 못해서.
그리고 그 책임은
조용히 개인과 가족의 몫이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거의 묻지 않는다.
왜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가.
개인의 문제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공통점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기억을 잃는다.
집중이 흐려지고,
감정 조절이 무너지며,
일상의 맥락을 붙잡지 못한다.
이 현상을
개인의 의지나 관리 부족으로만 설명하기에는
공통 조건이 너무 많다.
- 쉬지 못하는 생활 리듬
- 회복이 밀려난 수면 구조
- 멈추지 않는 자극 환경
이 조건들은 개인의 선택 이전에
사회가 제공한 기본 환경이다.
‘예방’이라는 말이 가리는 것들
치매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예방이다.
운동을 하고,
식단을 관리하고,
두뇌 활동을 유지하라는 조언들.
그러나 이 말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가린다.
예방이 불가능한 구조에서
개인에게만 예방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회복이 가능한 시간이 사라진 사회에서,
자극을 피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멈추면 불안해지는 구조 속에서
개인은 이미 불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
책임은 언제 개인에게 넘어왔는가
기억을 잃는 것은
개인의 실패처럼 다뤄진다.
돌봄의 부담도,
죄책감도
가족에게 집중된다.
그러나 묻지 않는다.
왜 이 사회는
기억을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을
표준으로 만들었는가.
회복되지 않은 뇌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회복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의 결과일 수 있다.
문명은 무엇을 요구해왔는가
현대 문명은 끊임없는 반응을 요구한다.
- 빠르게 답할 것
- 즉시 연결될 것
- 항상 준비된 상태로 존재할 것
이 요구는
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멈추지 말 것.
비워두지 말 것.
항상 처리할 것.
이 조건 아래에서
기억을 잃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예상 가능한 결과에 가깝다.
치매를 다시 부를 수 있다면
만약 치매를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회복 실패의 결과로 부를 수 있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 누가 관리하지 못했는가가 아니라
- 어떤 구조가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는가
이 질문은
책임을 개인에게서
사회로 이동시킨다.
질문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 시리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정답도, 지침도 없다.
다만 질문을 남긴다.
회복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채 살아온 사람에게
기억을 잃은 책임을
온전히 물을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의 질문을 더 남긴다.
만약 기억 상실이
문명이 만든 조건의 결과라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각주 · 참고문헌
- 만성 질환과 신경계 손상을 개인의 관리 실패가 아닌
사회적·환경적 조건의 누적 결과로 해석하는 관점은
The Myth of Normal (2022)에서
스트레스·신경계·현대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분석된다. - 현대 사회의 과잉 자극과 성취 중심 구조가
인간의 회복 능력을 침식한다는 비판은
The Burnout Society (2015)에서
‘성과 사회’와 ‘피로의 병리’ 개념으로 정식화된다.
📌 Meta Description
Is dementia a personal failure—or the outcome of a civilization that never allows recovery?
A closing essay on memory and modern society.
🔗 시리즈 안내
이 글은 《회복되지 않은 뇌》 시리즈의 종결편입니다.
앞선 글에서는 배경 자극, 수면 리듬, 회복의 상실을 다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