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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손열음 모차르트 K545 연주, 왜 다른가? – 클래식 비전공자의 감동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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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하나하나의 개성이 모여 만든 찬란한 절제
택배 노동자가 만난 진짜 음악 이야기


택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저녁, 무심코 흘러나오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K.545). 반복해서 다섯 번은 넘게 들었을까. 그러다 문득 하나의 연주에 귀가 꽂혔다. 바로 피아니스트 손열음, Yeol Eum Son.

그녀의 연주는 달랐다. 단순한 ‘좋음’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음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빚어내는 통찰, 개별의 소리가 군무처럼 어우러지는 조직력, 그리고 그 안에 조용히 감춰진 화려함.

 

 

손열음 모차르트 K545 연주, 왜 다른가?

모차르트 K.545는 흔히 ‘쉬운 소나타’라 불리지만, 연주자는 이 곡에서 단순함 속에 감정을 얼마나 섬세하게 담을 수 있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그건 단순한 기술로는 되지 않는다. 해석, 감정, 구조의 통합이 필요하다.

나는 유튜브에서 이 곡을 연주한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영상도 비교해보았다. 한 미국인의 연주는 너무 빠르고 음 하나하나가 개성을 잃은 채 흘러갔다. 유명한 신동 소년의 연주는 기술은 충분했지만, 감정의 깊이가 부족했다. 마치 정답은 외웠지만 문장의 맛은 모르는 듯한 연주였다.

 

하지만 손열음의 연주는 달랐다. 그녀는 각 음에 생명을 불어넣고, 마치 개성 있는 소리들이 모여 합창하듯이 흐르는 구조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 곡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검색해보니 손열음은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유학했다고 한다. 독일식 음악 교육은 구조 분석과 해석의 정밀함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그 치밀함을 단순히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해석으로 완성했다. 독일에서 배운 질서와 분석력에, 한국인의 감성, 그녀만의 사려 깊음이 더해졌다.

그 결과, 이 곡은 그녀의 손끝에서 절제된 감성과 숨은 열정을 품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마치 완벽하게 조직된 도시의 골목 사이로 해가 비추는 풍경 같았다. 정교함 속에 따뜻함이 있는 연주였다.

 

 

택배 기사로서 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음악을 듣는다. 지친 몸을 겨우 이끌고 트럭에 앉았을 때, 손열음의 모차르트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음악은 멀고 어려운 예술이 아니라 삶과 함께 흐르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이런 경험은 쉽게 오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단지 소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과 겹쳐질 때, 음악은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클래식은 낯설 수 있지만, 진심으로 들으면 누구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손열음의 연주는 바로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모차르트 소나타 16번은 밝고 가벼운 선율 뒤에 숨어 있는 세심한 감정의 결이 있다. 손열음은 그 결을, 마치 카메라의 심도 조절처럼 또렷하게 잡아낸다. 밝은 듯하면서도 내면에는 깊은 사색이 있고, 절제된 듯하면서도 형형한 에너지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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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손열음의 연주는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정서적으로도 편안하고, 구조적으로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특히 퇴근 후 조용한 시간, 나처럼 반복되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이 음악은 고요하지만 강한 위로가 되어준다.

이 글은 전문적인 음악 평론이 아니다.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아도, 악보를 보지 못해도, 진심으로 들으면 음악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손열음의 연주는 그렇게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 진심에 응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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