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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푸드 에세이

Eat to Stay Alive | 실천편 6 — 양파와 마늘, 된장을 한 번 더 쓰는 법

된장에 숙성된 양파와 마늘, 뒷다리살 고기를 담은 그릇이 따뜻한 나무 식탁 위에 놓여 있다. 한 번 사용된 재료가 다시 식사의 구조로 순환되는 모습을 담은 ‘살기 위해서 먹는다 – 실천 6편’ 대표 이미지.

 

 

먹는 문제를 넘어서, 
이제는 남는 문제를 다룬다.


양파와 마늘, 된장을 한 번 더 쓰는 법

(저장과 회수의 기술)


1. 먹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

실천편 4까지 오면서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지 않게 됐다.

 

뒷다리살로 단백질을 채우고,
밑반찬으로 식사의 밀도를 올리고,
국물 떡볶이조차 한 끼의 구조 안으로 끌어왔다.

 

이제는 버틸 수 있다.
자주 먹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배는 괜찮은데,
냉장고가 복잡해진다.

 

그리고 이 복잡함은
‘먹고 남아서’가 아니라
‘먹느라 남기지 못해서’ 생긴다.


2.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남는 것들이다

먹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는데
그 다음이 정리되지 않는다.

 

조금 남은 된장,
애매하게 남은 양파,
쓰다 남긴 마늘,
한 번 쓰고 끝난 고기.

 

하나하나는 사소하다.
하지만 쌓이면 다시 식사가 흐트러진다.

 

요즘처럼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지면
식사는 점점 ‘즉시 해결’의 문제가 된다.

 

피곤하고 배가 고프면
외식은 가장 쉬운 선택이다.

 

돈을 더 쓰면
오늘 저녁은 끝난다.

 

하지만 그 선택은
내일 아침을 남기지 않는다.

 

나는 이 지점에서 깨달았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건
먹는 순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 난 뒤
무엇이 남는지를 관리하는 문제
라는 걸.

 

그래서 이 편은 요리가 아니다.
저장과 회수에 대한 기록이다.


3. 절이지 않는 절임 — 된장 속 양파

나는 장아찌를 만들지 않는다.

 

식초도 쓰지 않고,
설탕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된장을 쓴다.

 

너무 싼 것도 아니고,
너무 비싼 장인용도 아닌
집에서 늘 쓰는 중간급 된장.

 

양파를 깨끗이 씻고
반나절 말려 물기를 뺀 뒤
된장 속에 그대로 박아 넣는다.

 

공기를 최대한 줄이고
위만 평평하게 눌러둔다.

 

며칠이 지나면
양파는 반찬이 되고,
된장은 달라진다.

 

오늘의 반찬이
내일의 조미료를 함께 준비한다.


4. 된장은 왜 순해지는가

양파는 단맛과 수분을 내놓고,
된장은 짠맛과 날을 내려놓는다.

 

그래서 이 된장은
덜 짜고,
덜 공격적이고,
이상하게도 더 깊다.

 

나는 이 상태를 이렇게 부른다.

 

“덜 돼직한 된장”

 

이 된장은
찌개를 끓여도 부담이 없고,
쌈장을 만들어도 과하지 않다.

 

양파를 꺼내 먹는 게 목적이 아니다.

 

된장을 한 단계 진화시키는 과정이다.


5. 마늘은 그대로 쓰지 않는다

마늘은 좋은 재료지만
그대로 쓰면 자극이 세다.

 

그래서 나는
마늘을 순화해서 쓴다.

 

껍질을 벗겨 하루 말리거나,
짧게 데쳐 물기를 완전히 뺀 뒤
된장 속 깊숙이 넣는다.

 

양파보다 짧은 시간만 둔다.

 

그러면 마늘은
자극 담당이 아니라
깊이 담당이 된다.

 

밥 위에 조금만 올려도
고기 없이 한 끼가 된다.

 

이건 절약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쉽게 만드는 준비다.


6. 남은 된장은 어디로 가는가

이제 된장은
이미 한 번 일을 했다.

 

짠맛은 누그러지고,
향은 정리됐다.

 

이 된장은 버리지 않는다.

 

찌개로 간다.
쌈장으로 간다.
다음 반찬의 바탕이 된다.

 

된장은
한 번 쓰고 끝나는 양념이 아니라

 

식사를 순환시키는 매개체다.


7. 고기는 이렇게 회수한다

나는 뒷다리살을
기름 없이 굽지 않는다.

 

기름 없는 고기는
열을 바로 맞으면
보호막 없이 마른다.

 

그래서 라드유를 한 스푼 쓴다.

 

기름을 빌려
겉만 노릇하게
튀기듯 굽는다.

 

이 보호막이 있어야
고기는 된장을 만날 자격이 생긴다.

 

식힌 뒤,
순해진 된장으로 얇게 코팅한다.

 

하루 정도 냉장.

 

먹기 직전에만
설탕 아주 소량,
고춧가루 조금,
마지막에 참기름.

 

이건 고기 요리가 아니다.

 

고기는 고기인데,
매일 먹을 수 있는 고기다.


8. 이건 반찬이 아니라 구조다

나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

 

재료는 늘 있던 것들이고
양념도 거의 추가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하나다.

 

한 번 쓴 재료를
끝내지 않았다는 것.

 

냉장고를 채우는 사람과
냉장고를 순환시키는 사람의 차이는
여기서 생긴다.

 

이 차이는
식비의 차이가 아니라
미래 선택지의 차이다.


9.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의 다음 단계

이제 나는
“무엇을 먹을까”보다
“이건 어디까지 쓰일까”를 먼저 생각한다.

 

식사는 단순해지고,
몸은 덜 지치고,
냉장고는 가벼워진다.

 

이건 대단한 요리 기술이 아니다.

 

그냥
살아남는 쪽으로
조금 더 정확해진 생활
이다.


한 줄로 정리하면

살기 위해 먹는다는 건
많이 먹는 것도,

잘 먹는 것도 아니라

 

끝까지 쓰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이 글은 Savor Balance의 기록 중 하나입니다.

Savor Balance는
음식과 회복,
그리고 일상의 구조를
‘삶의 균형’이라는 관점으로 탐색하고 기록하는 개인 아카이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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