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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 현상학적 측면에서

문학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 한강, 노벨상, 그리고 서구의 몰락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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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그를 선택한 문학 시스템이다.

 

📚 이 글은 2편 시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로,
성평등 이후 무너진 **신뢰의 해체(1편)**에 이어,
이제는 **문학이 어디로 우리를 이끄는가**에 대해 질문합니다.


💥 문제는 한강이 아니라, 한강을 선택한 시스템이다

슬픔만 남은 문학의 상징 – 고요한 물 위에 선 인물의 쓸쓸함
흐릿한 강 위에 서 있는 소녀 / 고독한 느낌의 감정 표현

 

한강 작가의 문학에 대한 비판이 있을 때,
많은 이들이 “그건 취향의 문제야”라며 비껴간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건 이것이다.

“정말 그 문학이 인류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
“내 자식이 그 문학 속 세계관처럼 살기를 바라는가?”
“그 삶이, 그 정서가 인류의 문명적 모델이 되어도 괜찮은가?”

 

나는 그 문학이 슬픔의 미학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 전체가 그 슬픔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지는 않는다.


🧱 한강 문학과 감정 소비의 시대

감정을 소비하는 인간 군상 – 방향 없는 고통의 반복
흐릿하게 번지는 감정의 파동 / 감정 클립보드에 갇힌 얼굴 없는 인물들

 

한강 작가의 글은 섬세하다. 조용하다. 고통스럽고, 감각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이 없다. 방향이 없다. 인간에 대한 상승 동력이 없다.

그런 글이 세계문학의 대표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작가의 성공”이 아니라 문학 시스템의 가치 판단을 반영하는 것이다.

  • 치유 없는 고통,
  • 반성 없는 파괴,
  • 창조 없는 감정소비

이것이 현대문학의 표준이라면, 우리는 아주 위험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 문학평론가 션 린 할버트는 한강 수상 이후 한국문학의 세계화 구조를 분석하며,
“한국문학이 국제 문단에서 번역되는 방식 자체가 표면적 정서와 감각의 소비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지적한다.1


🏛 노벨의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장에서 이렇게 남겼다.

“인류에게 가장 유익한 업적을 이룬 이들에게 상을 수여하라.”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 만들었지만 전쟁과 파괴에 쓰인 것을 후회하며
인류에 긍정적 기여를 한 자에게만 상을 주라고 남긴 것이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 – 인류에 유익한 업적은 어디에?
고대의 문서와 다이너마이트 / 회색 안개 속에 사라지는 유언서

 

그렇다면 묻자.

“한강 작가의 문학은 인류에게 유익한가?”
“그 문학을 읽고 난 후, 인류는 회복되고 있는가?”
“그 메시지는 인간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가?”

 

만약 이 질문 앞에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 수상은 노벨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 서구 문명의 몰락 – 감정, 고통, 해체만 남은 시대

지금의 서구 문명은
진리보다 자기표현,
질서보다 해체,
이성보다 자기감정의 정당화를 중시한다.

그 결과, 문학은 더 이상 다음을 이끌지 않는다: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 “나는 얼마나 아픈가”만을 반복한다.

슬픔이 깊은 문학은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러나 슬픔만 남긴 문학이 문명의 방향을 이끈다면,
그 문명은 무기력 속에 무너진다.

 

▶ 이명원 평론가는 “노벨문학상과 한국문학”에 대한 논문에서
“세계문학 시스템에서 한국문학은 여전히 주변부이며, 그 선택은 자국 문단과 외부 문단의 수요에 따라 ‘감정적 기호’로 정리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2


🔎 문학의 마지막 질문 – 내 자식이 그렇게 살기 원하는가?

문학이란 본디 인간의 영혼을 움직이고,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문학은
“상처를 감상하고 소비하는 것”에 멈춰버렸다.

나는 내 자식이 그런 세계 속에서
슬픔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훈련만 하길 원치 않는다.

나는 그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을 찾기 바란다.

 

▶ 최재봉 평론가는 “문학의 세계화 전략과 노벨문학상”에 대해 말하며,
“진정한 세계문학은 감정 소비보다도 인간 보편의 가치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3


🧭 결론 –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한강은 잘못이 없다.
문제는 그를 세계문학의 대표로 추켜세운 시스템에 있다.


그리고 더 깊은 문제는,
그 선택에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에 있다.

감정에 갇힌 문학 – 길을 잃은 인류의 독서 행위
수많은 책 더미 속에서 고개를 숙인 독자 / 책이 아니라 감정을 들여다보는 눈

문학은 인류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인류가 따라야 할 삶의 모델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읽는 글이
읽고 끝날 글인가, 살아갈 글인가?

 

지금 그 질문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문명 전체를
감정으로 포장된 무기력 속에 저당 잡히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2편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1편에서는 성평등 이후,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어떻게 해체되었는지를 다루었습니다.
👉 1편 보러 가기: 《신뢰가 사라진 사회 – 성평등 이후, 무엇이 무너졌는가》

💡 두 편은 함께 읽을 때, 감정의 해체와 문명의 방향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참고자료 및 인용 문헌

1 션 린 할버트,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의 한국문학과 번역 ‒ 남아 있는 문제와 새로운 과제」, 『비교한국학』 Vol. 32, No. 3, 2024, pp.109‑139. KCI 논문 보기

2 이명원, 「노벨문학상과 한국문학」, 『사회비평』, 2007. DBpia 보기

3 최재봉, 「한국 문학의 세계화와 노벨 문학상」, 새얼문화재단 논문, DBpia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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