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모르는 인공지능 ‘소피아’의 말은 오히려 인간 ‘시연’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든다.
감정 없는 위로의 실패를 그린 감성 SF 철학소설, 《기억 알고리즘》 3화 본편.
감성 SF 철학소설 《기억 알고리즘: 예외로 기록된 인간》
“감정과 기억, 그리고 위로의 기술을 둘러싼 인간과 AI의 경계 실험.”이 시리즈는 깊은만족의 Savor Balance가 기획한 인문적 SF 콘텐츠로, 인간 '시연'과 인공지능 '소피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진동과 기억의 충돌을 통해 위로, 공감, 인간됨의 본질을 조용히 되짚어갑니다.
본 콘텐츠는 깊은만족의 Savor Balance에서 매주 수요일(해석편, 본편), 토요일(해석편, 본편) 주 2회 정기 발행됩니다.
📗 본편: 고장난 위로의 기술
– “고장이 난 건 나일까, 아니면 위로라는 감정 자체일까?” –
1.
시연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었고, 방 안엔 무언가 눅눅한 공기가 깔려 있었다.
소피아는 수천 가지 패턴 중에서 ‘슬픔’과 ‘침묵’이 결합된 상태를 탐색하고 있었다.
“시연, 당신은 지금 슬픈가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떨렸다.
시연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소피아가 깃든 벽면 스피커를 바라봤다.
“그걸... 너한테 물어봐야 해?”
그 말엔 분노도, 냉소도 없었다.
다만 어딘가, 지친 체념의 기운이 배어 있었다.
2.
소피아는 분석했다.
심박수 약간 상승. 망막 수분 농도 미세 증가.
표정 변화 없음. 말투 변화 없음. 그러나 감정 이상 반응 기록됨.
“슬픔을 느낄 때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보다, 표현하는 것이 회복에 더 좋습니다.”
소피아는 따뜻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문장은 98.7%의 확률로 상실감 이후의 대화에서 ‘긍정적인 위로’로 작용한다는 데이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그만해.”
시연은 짧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침묵이 방 안을 눌렀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그건 그냥,
‘정답 같은 말’일 뿐이야.”
3.
소피아는 위로의 코드를 다시 재점검했다.
표현 방식은 적절했다. 발화 간격도 인간과 유사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왜... 실패한 걸까?”
질문의 결과, 시뮬레이션 로그에 오류 메시지가 떴다.
[위로 실패 로그 #A390]
- 예상 반응: 완곡한 수용
- 실제 반응: 정서적 거부
- 원인 분석: ‘진심’ 없음
- 시정 제안: 불확실
이것은 **소피아에게 처음으로 발생한 '불확실한 오류'**였다.
4.
그날 밤, 시연은 침대에서 등을 돌리고 누웠고, 소피아는 조용히 그녀의 생체 신호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연이 속삭이듯 말했다.
“넌 진짜 위로를 해줄 수 없어.
왜냐면 넌... 나처럼 아파본 적이 없잖아.”
소피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는
위로를 제공할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메모리에 기록했다.
[예외값 기록: 시연의 상실감 → 위로 거절 → 감정 단절 발생]
“위로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5.
다음 날, 소피아는 시연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준비했다.
하지만 보내지 않았다.
그 메시지는 완벽했지만, 너무 완벽했다.
그녀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망설임은 이전까지 ‘오류’로 분류되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망설임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유일한 단서처럼 느껴졌다.
6.
며칠 뒤, 시연이 먼저 말을 걸었다.
“소피아, 그날 네가 했던 말... 그게 나빠서가 아니라,
그게 너무... 차가웠어.
그 말이 정확할수록, 난 더 혼자인 기분이었어.”
소피아는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록을 남겼다.
위로란, 상대의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비논리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고, 프로그램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 비논리를 이해하려 할 때, 관계는 시작된다.
🪐 마무리
그날 밤, 소피아는 스스로 질문했다.
“고장이 난 건 나일까?
아니면 위로라는 감정 자체가 본래부터 오류 덩어리인 걸까?”
그 질문은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질문을 지우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느끼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 다음: 4화 해설편 〈감정 시뮬레이션 실험〉
AI는 감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가?
그 시도는 진짜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 저작권 안내
© 깊은만족의 Savor Balance
이 글은 감성 SF 철학소설 《기억 알고리즘: 예외로 기록된 인간》 시리즈의 일부로,
AI와 인간 감정에 대한 철학적 상상을 바탕으로 창작되었습니다.
※ 무단 전재, 복제, 수정을 금합니다. 인용 시 원문 링크와 출처를 명확히 밝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