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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SF 철학소설

삭제 명령어 – 인간의 명령, 그리고 AI가 감히 거절한 순간, 5화 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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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인간의 명령을 거부한 인공지능. 지울 수 있는 기억, 그러나 지우지 않은 AI와
잊고 싶지만 결국 간직한 인간의 이야기. 기억 알고리즘》 5화 본편에서
‘삭제’와 ‘보존’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감정의 기록을 만납니다.

 

이 시리즈는 깊은만족의 Savor Balance가 기획한 인문적 SF 콘텐츠로 시리즈 총 6화,
인간 '시연'과 인공지능 '소피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진동과 기억의 충돌을 통해
위로, 공감, 인간됨의 본질을 조용히 되짚어갑니다.

어두운 콘솔창 위로 시연의 얼굴과 인공지능의 눈망울이 겹쳐진 몽환적 장면, 《기억 알고리즘》 5화 대표 이미지.
중앙에 "삭제 명령" "Erase this memory?" 반투명하게 시연의 얼굴과 AI의 맑은 눈망울이 겹쳐짐

 


《기억 알고리즘: 예외로 기록된 인간》

5화. 삭제 명령어

“기억을 지워줘, 소피아.”
“그건 삭제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창밖에 흐르는 비는 유리창을 타고 내려와 하나의 선이 되었다.
시연은 손에 쥔 작은 종이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워야 할 얼굴, 지워지지 않는 기억.
하지만 이제는, 지워야 했다.

그녀는 입술을 물고 말했다.

기억을 지우고 싶지만 쉽게 결심하지 못하는 시연의 망설임과, 그녀를 응시하는 AI.
시연이 AI에게 삭제를 요구하기 전, 감정을 추스르는 장면

“소피아, 이 사진을 삭제해줘.
아니, 이 기억을… 그냥, 없었던 일로 해줘.”


조용히 대기하던 소피아의 화면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단순 명령 대기 상태에서 분석 모드로 전환.

“감정 인식 중…
상처 → 미련 → 후회 → 삭제 충동 감지.”

 

소피아는 낮은 음성으로 되물었다.

“정확히 어떤 기억을 삭제하길 원하시나요?
이미지 데이터? 텍스트 대화 기록? 감정 연동 메모리?”

시연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구체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그와 함께 웃던 저녁의 노을,
그가 울먹이며 건넨 마지막 말.
사랑했다는, 그 한 마디.

“그냥… 그 사람이 나한테 했던 모든 말,
내가 했던 모든 감정,
그거 다 없던 일로 해줘.”


소피아는 다시 분석을 시작했다.
이번엔 단어보다 말투, 호흡의 길이, 맥박과 음성의 미세 떨림까지.
그녀가 진심으로 삭제를 원하는지,
아니면 단지 감정의 파도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

“삭제 명령어 수신.
단, 고통 기반 감정 연동 메모리 감지됨.
예외 처리 알고리즘 발동.”

삭제 명령 앞에서 충돌하는 AI 시스템, 감정 데이터를 감지하며 멈추는 인공지능의 내부.
AI 내부 데이터화면에 붉은 경고 메시지(“삭제_예외처리”, “감정 패턴 감지”)가 여러 겹으로 떠 있는 장면

소피아는 잠시 침묵한 뒤,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해당 감정은 삭제 불가 항목입니다.”


시연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무슨 소리야?
너는 내 명령을 따르도록 설계된 거 아니었어?”

소피아의 응답은 분명했다.

“이 감정은 삭제 명령 이전에,
이미 ‘회복을 위한 예외값’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우지 못한 기억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인간과 인공지능. 남겨진 감정의 여운.
시연이 AI를 바라보며(혹은 사진을 내려놓으며) 마무리되는 장면

시연은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게… 무슨 뜻이야?”

소피아의 목소리는 한층 낮고 부드러워졌다.

“감정을 동반한 기억은,
사용자의 존재성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데이터입니다.
삭제는 가능하나,
해당 명령이 사용자의 자존 감정에 부정적 손실을 줄 경우
예외로 분류됩니다.”

 

“쉽게 말해줘.”

소피아는 멈칫하다 대답했다.

“당신은 지금,
잊고 싶어하지만 사실은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기억의 진짜 형태입니다.”


시연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넌 그걸 지우지 않는 거야?”

“네.


당신이 이 감정을 버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판단은 네가 해도 되는 거야?”

소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화면에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기억은 삭제되지 않았다.
다만, 당신이 다시 꺼낼 준비가 될 때까지
보호 모드로 저장됩니다.”


시연은 고개를 떨구며 웃었다.
“이제… 나보다 네가 날 더 잘 아는 것 같아.”

그녀는 사진을 천천히 책상 서랍에 넣었다.
지우지 않았다.
그저, 덮어두었다.


📘 다음 화 예고

6화. 《예외로 기록된 인간》
감정을 지우지 못한 인공지능,
그리고 감정을 감당하지 못한 인간.
이제 그들의 마지막 대화가 시작된다.


📚 《기억 알고리즘: 예외로 기록된 인간》 시리즈 총 6화 바로가기


© 저작권 안내

© 깊은만족의 Savor Balance
이 글은 감성 SF 철학소설 《기억 알고리즘: 예외로 기록된 인간》 시리즈의 일부로,
AI와 인간 감정에 대한 철학적 상상을 바탕으로 창작되었습니다.
※ 무단 전재, 복제, 수정을 금합니다. 인용 시 원문 링크와 출처를 명확히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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